고양이가 비싼 캣타워 대신 ‘좁은 상자’에 집착하는 과학적 이유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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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종이 상자 안에 몸을 웅크리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편안하게 쉬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

집사들의 영원한 미스터리

큰맘 먹고 수십만 원짜리 최고급 캣타워나 푹신한 마약 방석을 사줬는데, 정작 고양이가 들어간 곳은 택배가 담겨 왔던 낡고 좁은 종이 상자였던 허무한 경험.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셨을 겁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단순히 고양이의 알 수 없는 취향이라고 넘기기엔, 이 행동 뒤에는 야생 시절부터 이어져 온 놀라운 생존 본능과학적인 스트레스 해소 메커니즘이 숨어 있습니다. 고양이가 그토록 상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4가지 진짜 이유를 심층 분석합니다.


1. 🛡️ 포식자로부터의 ‘안전 가옥’ (본능적 방어 기제)

야생에서 고양이는 뛰어난 사냥꾼이지만, 동시에 코요테나 독수리 같은 더 큰 맹수에게는 연약한 사냥감이기도 했습니다. 사방이 뻥 뚫린 개방된 공간은 고양이에게 “언제든 공격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줍니다.

반면, 튼튼한 벽으로 둘러싸인 상자는 등 뒤에서의 기습 공격을 원천 차단해주는 완벽한 방어막입니다. 좁은 상자 안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으면, 고양이는 “내 등은 안전하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이는 집고양이에게도 여전히 남아있는 강력한 DNA 각인입니다. 상자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본능적인 공포를 잠재워주는 **’가장 안전한 요새’**인 셈입니다.

2. 🎯 최적의 ‘매복(Ambush)’ 포인트

고양이는 추격전보다는 숨어서 기다리다가 순식간에 덮치는 ‘매복 사냥’의 귀재입니다. 상자 안은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밖의 동태를 살피기 아주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집 안에서 고양이가 상자에 숨어 있다가 집사의 발목을 향해 튀어나오는 행동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는 장난이 아니라 야생의 매복 사냥 본능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상자는 사냥감(장난감 또는 집사의 발)이 방심하고 지나갈 때를 노릴 수 있는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합니다.

3. 🧠 스트레스 감소 효과 (과학적 입증)

고양이의 상자 사랑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닙니다. 실제로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University of Utrecht)**의 연구팀은 보호소에 새로 들어온 고양이들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한 그룹에는 숨을 수 있는 상자를 주고, 다른 그룹에는 주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상자를 받은 고양이들은 그렇지 않은 고양이들에 비해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수치가 현저히 낮았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도 훨씬 빨랐습니다. 고양이는 갈등 상황에서 맞서 싸우기보다 **’숨는 것(회피)’**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상자는 이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되찾게 해주는 **’대피소’**이자 **’치료제’**입니다.

4. 🌡️ 체온 유지를 위한 ‘최고의 단열재’

고양이의 정상 체온은 38~39도 정도로 사람보다 높습니다. 그들이 가장 쾌적함을 느끼는 환경 온도는 30~36도인데, 이는 사람이 쾌적하다고 느끼는 실내 온도(약 20~25도)보다 훨씬 높습니다. 즉, 고양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추위를 더 잘 느낍니다.

여기서 종이 상자(골판지)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골판지는 여러 겹의 종이 사이에 공기층이 형성되어 있어 열 전도율이 낮은 훌륭한 단열재입니다. 좁은 상자 안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들어가 있으면 자신의 체온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좁은 공간을 체온으로 금방 따뜻하게 데울 수 있습니다. 고양이에게 상자는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따뜻한 **’가성비 최고의 난로’**입니다.


낡은 상자, 버리지 마세요

이제 고양이가 택배 상자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비싼 집 놔두고 왜 저래?”라고 서운해하지 마세요. 그 낡은 상자는 고양이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따뜻하며, 스트레스가 없는 완벽한 안식처입니다. 오늘 도착한 택배 상자가 있다면, 바로 분리수거함으로 보내기 전에 고양이에게 양보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반려묘는 최고의 행복을 느낄 것입니다.